
욕실 공사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타일만 바꿔주세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그 말의 무게는 더욱 크다. 욕실은 집에서 가장 많은 수분과 습기가 모이는 공간이고, 시간이 지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이미 썩어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작업도 그랬다.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의 욕실 공사였다. 처음엔 평범한 타일 교체 공사로 시작했다.
기존 타일을 철거하고 나자, 그 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녹슨 급수 배관과 갈라진 몰탈, 그리고 곰팡이 자국이 가득한 방수층이었다.
벽체 일부는 물이 스며들면서 약해져 있었다. 타일만 교체했다면, 그 아래에 숨어 있는 이 모든 문제는 그대로 묻혔을 것이다.
이럴 땐 결정이 필요하다. 단순 시공자가 아닌 ‘장인’이라면 눈에 보인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뢰인에게 모든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추가 공정과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 이 상태로 타일만 바르면 몇 년 안에 다시 곰팡이가 피고, 타일이 뜨거나 갈라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전했다. 다행히도 고객님은 “장인님 믿고 맡길게요”라며 흔쾌히 동의해주셨다.
추가 철거를 진행하자, 생각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욕조 배수구 주변은 이미 틈이 벌어져 물이 새고 있었고, 바닥 슬라브는 습기를 먹고 들떠 있었다. 이럴 때는 철저한 건조와 함께 방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기존 방수층을 완전히 제거하고, 바닥 경사를 새로 잡은 후, 이중 방수 시공을 진행했다. 벽면은 결로 방지 시트를 덧대고, 몰탈로 평을 잡은 뒤, 고밀도 접착제와 함께 타일을 시공했다. 가장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정확한 수평과 수직’을 지키는 일이다.
줄눈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예쁘게 메우는 작업이 아니라, 타일의 밀착 상태와 욕실의 수명을 결정짓는 핵심 공정이다.
나는 항상 손끝에 집중한다. 줄눈은 내가 욕실에 남기는 마지막 손길이자, 나의 책임이 닿는 마감선이기 때문이다.
욕실 공사 중 만난 오래된 문제들은 단순한 하자가 아니다. 그것은 그 집이 지난 시간 동안 어떻게 관리되어 왔는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래서 때로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태도’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감추기보다 드러내고, 수명을 연장하기보다 새로 숨을 불어넣는 일.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장인의 일이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나면, 나는 늘 그 욕실을 천천히 둘러본다. 타일 하나하나에 묻은 손의 흔적, 줄눈 사이사이에 들어간 정성, 물이 흐를 방향을 계산해 만든 바닥의 경사. 그 모든 것들은 비록 고객의 눈엔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안다. 이 욕실이 최소 10년은 문제없이 버틸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걸.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냥 타일만 깔면 되지, 왜 그렇게까지 해요?"
하지만 나는 안다. 오늘 내가 이 욕실에 쏟은 정성은 내일 다른 공간에서 또다시 이어질 수 있는 ‘장인의 신뢰’가 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없이 욕실 한 켠에 앉아, 방수층을 다시 바르고, 몰탈을 펴 바르고, 타일을 정직하게 붙인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그 벽면 너머에 담긴 시간과 기억이 더 깊다는 걸 알기에.
– Ansajang Tiles | 손끝장인 안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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