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작은 욕실 하나를 맡았다.
오래된 아파트.
벽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엔 틈이 벌어지고, 곰팡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고객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잘 안 보이니까 대충 해도 돼요."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수평계를 꺼냈다.
모서리는 공간의 얼굴이다.
■ 사소해 보이는 틈 하나
해체를 시작하자, 벽 타일과 바닥 타일이 따로 놀고 있었다.
줄눈도 벌어져 있었다.
원인은 시공할 때 벽과 바닥 경계를 제대로 맞추지 않고 급하게 실리콘으로만 덮어버린 탓이었다.
“여긴 다 살았으니까 괜찮아.”
옛날 시공자는 그렇게 말했겠지. 하지만 시간은 속이지 않는다.
그 사소한 틈 하나가 곰팡이를 불러오고 물이 스며들고, 결국 전체 벽을 무너뜨린다.
■ 천천히, 그리고 정성껏
나는 바닥과 벽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물매를 다시 잡았다.
물이 흐를 수 있게 바닥을 아주 미세하게 기울였다.
그리고 타일 한 장 한 장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맞췄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경계선.
줄눈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타일을 조금씩 갈아냈다.
단순히 붙이는 것이 아니라, 맞추고 숨 쉬게 했다.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본다.
걸리는 데 없이, 부드럽게 이어진 경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 마지막 한 줄을 마치며
줄눈을 메우는 마지막 순간,
나는 한참 동안 벽과 바닥을 바라봤다.
누구는 보지 않을 거다.
누구는 신경 쓰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조용한 모서리 하나가 이 욕실을 지탱해준다는 걸.
장인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 마음을 쓴다.
■ 그날, 고객이 다시 돌아와 말했다
며칠 후 완공된 욕실을 보고 고객이 말했다.
"모서리가 왜 이렇게 반듯해요? 신기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시간을 들였어요. 이건 급하게 할 수가 없거든요."
모서리 하나.
벽과 바닥이 만나는 그곳에 나는 오늘도 내 하루를 쌓아올렸다.
– Ansajang Tiles | 손끝장인 안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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